새벽 4시, 잠이 깬 저는 서둘러 발바닥 상처를 확인했습니다.

살갗이 벗겨져 나간 벌건 생살 부위가 욱신거렸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고작 살갗이 약간 까진 것 가지고 길을 멈추어 세울 수도 없고해서

텐트를 걷고 다시 이동 준비를 했습니다.

당분간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만큼 주행거리를 줄이고 되도록 유스호텔을 이용하면서

몸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빨리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조급한 마음 덕분인지 오전이 채 지나기 전에 구조하치만에 도착하여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온전히 남은 하루의 시간을 허비하기 싫어 상처를 돌본 후 다시 시라가와고우로 페달을 밟았습니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할 때마다 발바닥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는 걸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하루 평균 약 100km를 달리기 위해 오랜 시간 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발바닥이 아프다면

자전거 여행이 여간 곤란해지는 게 아닐 것입니다.

몸과 남은 여정을 생각한다면 당분간 쉬는 것이 가장 현명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무모함이 미덕이 될 수 있는

어리석은 젊음을 가지고 있기에 애초의 일정을 강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처를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자멸을 초래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에 천리를 가는 적토마라 불렸던 한혈마도 발바닥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로 

천리를 갈 수 있는 용력이 물거품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얻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시라가와고우로 가는 길은 산악 위에 펼쳐진 미라바 호수를 끼고 달리는데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그 길은

발바닥 상처를 잊을 정도로 아름답고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굽이치는 아름답고 위험한 길을 시원하게 질주하는데,

특히 오토바이를 타고 오르막 길을 시원스럽게 달려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한번쯤 일본을 오토바이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리막 길을 만나면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세상에서 인간이 올라 타 움직일 수 있는 그 무엇도

제 자전거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시라가와고우(白川鄕)는 이름과는 달리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볐습니다.

깊숙한 산악에 자리잡은 이곳까지 많은 이들이 찾는 것을 보면 세상 어디에나 아름답고 보기 좋은 곳은 사람들로 붐비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덕에 사라가와고우에서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이 싹 달아나 저는 도중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야영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타카야마로 향했습니다. 타카야마까지는 56km, 1289m 고지를 넘어야 하는 길입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시작되는 360번 도로는 양방향으로 겨우 차가 빗겨갈 수 있는 좁은 2차선 도로이고, 무엇보다 경사도가 매급 심한 언덕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벼랑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줄곧 자전거를 끌고 오르는데 생각과는 달리 야영할 장소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길은 시라가와고우에서 타카야마로 넘어가는 옛길인 것 같습니다.

옛길인만큼 정취는 매우 뛰어나나 가파른 오르막 길을 땀으로 도배를 해야했습니다.

미리 길에 대한 사전정보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을텐지만

길에 들어선 이상 후회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점점 날은 어두워지고 가지고 온 물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쉬어갈 수 있는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점차 위기감이 몰려와

한시 바삐 산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에 욱신거리는 발에 더욱 힘을 줄수밖에 없습니다.

오른편에서 자전거를 잡고 오르다가 힘에 부치면 왼편으로 위치를 바꾸어 오르는데

땀이 헬멧을 타고 비오듯 눈앞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계곡의 물소리가 어느덧 발밑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360번 도로에 접어 들었을 때만해도 물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더니

한 시간 가량 오르니 귀밑에서 들리고

또 한 시간 가량 오르니 이제 물소리가 발에 밟히고 있는 것입니다.

울창한 숲과 나무로 어둡기만 하던 주위도 점차 밝아지고, 하늘도 틔이고 있어 고갯마루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정상, 오르막이 마침내 꺾였습니다.

여행을 할수록 길에 대한 느낌이 확실해지고 있는데, 

어쩌면 길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급경사와 급회전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길,

소도시마에서의 낙마 사고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 덕에 안전하게 산을 내려올 수 있었는데,

핸들바를 잡았던 손이 저려옵니다.

산을 내려와 한숨을 돌린 다음 쌀쌀해진 저녁 날씨에 버스정류소 옆에 자전거를 기대어 세우고 방풍자켓을 꺼내입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내려가야 야영할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길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20분가량을 더 내려오니 집 대여섯 채가 옹기종기 모인 마을에 카페와 꽃공원이 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이정표를 보니 타카야마까지 34km,

이미 어둠이 내린 8시경 저는 주위를 신경쓰면서 영업이 종료된 카페 공원으로 들었습니다.

자판기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뽑아 벤치에 앉자

상처난 발바닥으로 100여km를 왔다는 생각과 하룻밤을 쉬어갈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는 안도감으로

기분 좋게 담배 한 대를 피우려고 하는데

분명히 등에 짊어지고 있어야 할 배낭이 없는 것입니다.

으악~,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괴성에 멀리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농부가 고개를 돌려 저를 살핍니다.

방풍자켓을 꺼내 입은 다음 버스정류소에 배낭을 두고 그냥 온 것입니다.

순식간에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 갑니다.

꼭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이 코앞에 닥쳐야 생각의 속도가 빨라는 건 왜일까요.

휴대용 렌턴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자동차 불빛을 향해 뛰어 가 차를 멈춰 세웠습니다.

인사말 밖에 모르는 일본어 대신 영어로 제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차에 태워주기를 바랬지만 젊은 운전자는 수염 덥수룩하고 손에 시커먼 것을 든 낯선이가 불안했던지

정중하면서도 냉정하게 거절하는데

한 대 쥐어 팰 수도 없고 그저 아리가또고자이마스로 차를 보내야 했습니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귀중한 것이라야 여권과 디지털카메라 소형지도 지금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노트가 전부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앞으로의 원만한 여행을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발바닥은 욱신거리고

몸은 지쳐 금방이라도 퍼질 것 같은데

할 수 없습니다 신나게 내려온 내리막 길을 기어서라도 다시 올라가는 수밖에요.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차량의 불빛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절룩거리며 뛰어가는데

마라톤 완주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지금은 상황과 몸상태는

마라톤에서 흔히 사점, dead point라 하는 35~40km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정신적 육체적 상태와 비슷합니다.

다행히 트럭의 불빛이 다가옵니다. 

도로 변으로 나가 손을 흔들었지만 무심하게 저를 스쳐 지나갑니다.

눈빛만 마주쳐도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일본사람들의 행동이 야속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언제든 길은 있는 법이고 항상 돕는 이들이 주변에 있기 마련이듯

시라가와고우로 넘어간다는 일본인 부부를 만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어둠속을 되짚어 가는 길은 꽤 멀었습니다.

지나치는 버스정류소들을 자세히 살피는데 좀처럼 가방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불안해지는지 자꾸 고개를 돌려 저를 확인하던 운전자가

차를 길옆에 세우더니 더듬더듬 한국말로 

'가방 없는데요'라고 말하는데

가드레일 위에 올려 놓은 제 가방이 그 상태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게 보입니다.

일본여행 이후 가장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아리가또고자이마스'를 일본인 부부에게 계속해서 외쳐습니다. 

부부가 탄 차량을 보내고 나니 다시 산길을 내려가야 하는 게 또다른 걱정이었지만

마침 마을로 내려가는 마지막 버스를 얻어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방을 찾아 돌아온 저는 그대로 풀밭 위에 큰대자로 뻗었는데

그 순간 문득 푹신푹신한 잔디밭은 천국에 깔린 보도블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에 누워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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